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시민행동선언
우리는 잊을 수 없다. 2014년 4월 16일 어두운 바다 속으로 침몰해가던 세월호를 잊을 수 없다. 죽음의 두려움 속에서 사랑해, 미안해, 마지막 메시지를 남겼던 사람들을 잊을 수 없다. 억울한 죽음 앞에 사랑하는 이들을 차마 가슴에 묻지 못하는 사람들을 잊을 수 없다. 여전히 뭍으로 나오지 못한 실종자들을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들을 잊을 수 없다.
우리는 잊지 않는다. 탑승객 전원 구조라는 언론 보도에 가슴을 쓸어내렸던 우리는 얼마나 순진했던가. 해경이, 해군이, 안전행정부가, 해양수산부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서 탑승객들을 구조할 것이라는 우리의 기대는 얼마나 허망했던가. 국정원이, 청와대가 정확하게 상황을 파악하며 신속한 대응을 종합 지휘할 것이라는 우리의 예상은 얼마나 무참히 배반당했던가. 여객선 안전 운행을 위한 규제와 점검이 철저히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우리의 믿음은 얼마나 비현실적이었던가. 우리를 침몰시킨 이 모든 책임자들을 우리는 잊지 않는다.
우리는 그 책임자들이 지금도 참사를 진행시키고 있음을 잊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는 침몰사고와 참사의 책임을 밝히고 싶지 않은 듯하다. 청해진해운과 회장 유병언에게는 침몰사고의 책임을 묻는 대신 정부가 져야 할 정치적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있다. 승객들의 안전을 이윤의 대가로 바친 사건에 대한 검찰의 기소는 고작 횡령과 배임죄 앞에서 멈췄다. 대신 정부는 전국에 수배 전단을 돌리고 군대까지 동원하여 온 국민을 거대한 추격 영화의 관객으로 만들고 있다. 무대에서 해경, 해양수산부, 안전행정부, 국정원, 청와대 등은 이미 슬그머니 빠져나가고 있다. 한 사람도 구조되지 않은 참사에 대한 정부의 책임조차 은근슬쩍 사라지고 있다. 그러면서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수사 아래 안전을 지키기 위한 공공성을 분해시키는 계획을 강행하고 있다.
영화로 부족했는지 박근혜 대통령은 개각 이벤트를 선보이고 있다. 정부를 믿지 못하겠다는 국민의 요구에 반성과 쇄신의 모습은 없다. 유일한 공통점은 ‘친박’일 뿐인 인사들을 이벤트에 출연시켰다. 규제완화, 민영화, 원전 수주 등을 일관되게 추진한 인물을 경제부총리로 내정하는 한편, 여당 내부에서도 논란을 일으키는 인물을 국무총리 후보라며 내세웠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리도 분주한가. 그동안 실종자 수색 작업에 나선 민간 잠수사들에게 수고의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있었다는 소식은 충격적이다. 가족들과 온 국민이 실종자들을 간절히 기다릴 때,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예산 책정만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가. 분주해야 할 곳에서 손 놓고 있던, 손 놓아야 할 곳에서 움켜쥔 통제의 손아귀를 풀지 않던 모습. 박근혜 정권은 한 치도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는 망각이 두렵다. 잊을까 두려운 것이 아니다. 우리를 침몰시킨 세상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대로 굴러갈 것이 두렵다. 그래서 우리는 잊지 않을 것이다. 이 모든 책임자들이 허둥대며 사실을 숨기기에 급급했던 동안, 아픔을 위로하고 진실에 다가서려고 온 힘을 기울였던 것이 우리 스스로임을 잊지 않을 것이다. 국정조사 계획 논의부터 기 싸움만 벌일 뿐 철저한 진상 규명의 의지를 보이지 않는 국회를 마냥 쳐다보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또한 우리는 서로의 안전을 지켜주기 위해 우리가 기댈 힘은 우리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함께 행동해야 함을 잊지 않을 것이다.
가족과 함께 하는 서명은 세월호 참사로 흘린 눈물을 닦는 손수건이다. 검찰과 국회가 철저한 진상 조사를 위한 자기 역할을 하는지 지켜보는 날카로운 눈이다. 가족과 국민의 힘으로 끝까지 진실을 밝히자고 약속하는 새끼손가락이다. 진상 조사에 어떤 성역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돌망치다. 세월호 참사를 가둔 진실의 문을 함께 여는 열쇠다. 세월호 참사 이전과 달라져야 할 특별한 조치들을 명령하는 법이다. 세월호 참사를 낳은 책임자들이 잘못을 반성하고 벌을 받도록 내리는 호령이다.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함께 놓는 주춧돌이다.
백만 서명을 이뤄낸 우리는, 백만인의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범국민서명운동을 확산하기 위한 노력을 다할 것이다. 학교에서, 거리에서, 공장에서, 아파트에서, 골목에서, 시장에서, 버스정류장에서, 지하철역에서, 인터넷에서 우리의 손발이 닿는 모든 곳에서 서명을 받을 것이다. 전국 곳곳에서 범국민서명운동의 흐름이 출렁이도록 가족과 함께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세월호 참사 이후의 한국사회는 바로 범국민서명의 밑돌 위에 세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망각의 두려움을 기억의 약속으로 달궈 진실의 문을 함께 여는 열쇠를 만들 것이다. 그 문을 열고 다른 사회를 만들 것이다.
2014년 6월 21일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한 장의 힘 시민대회 참가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