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 칼럼 [존엄과 안전]은 세월호 참사 이후를 위한 우리 모두의 권리를 이야기하는 꼭지입니다. 4월 16일 이후의 우리 사회는 달라져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존엄과 안전위원회는 말하고 모이고 연대할 권리, 모든 이들이 평등하게 지원받고 애도 받을 권리, 안전을 위한 근본적인 대안을 요구할 권리를 위해 모였습니다. 우리 모두의 존엄하고 안전할 권리를 향하여!
박근혜정부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 수 없다,
안전한 사회는 시민의 힘으로 만들자!
김혜진 ㅣ 불안정노동철폐연대
많은 시민들이 4·16 참사 이전과 이후는 달라야 한다고 말한다. 맞다. 수많은 목숨을 희생시키고 나서야 사람보다 돈을 중요하게 여기는 세상의 참혹함을 깨달았기에 더 이상 과거를 답습할 수는 없다. 정부도 나서서 바꾸겠다고 한다. 정부는 그것을 ‘국가개조’라고 표현한다. 정홍원국무총리는 국가개조를 위해 각계가 참여하는 ‘국가대개조 범국민위원회’를 만들겠다고 한다. 그런데 도대체 이 사회를 어떤 사회로 바꾸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말로는 ‘안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가치’라는 확고한 인식을 갖도록 변화시키겠다고 하는데, 그들이 바라는 세상은 안전한 사회가 아니라 안전제일주의 사회인 것 같다.
안전한 사회와 안전제일주의 사회는 다르다. 안전제일주의는 안전이 중요하다고 ‘인식’하는 사회이며, 안전한 사회는 사회 구조와 제도, 가치 모두가 변화하여 인간의 존엄과 생명이 존중되는 사회이다. 안전제일주의 사회는 국가가 열심히 ‘안전’을 외치고 개인들은 그 안전을 지키는 대상이 되는 사회이다. 이런 사회에서 재난과 사고는 개인이 안전의식이 없어서 생긴 문제로 치부된다. 그러나 안전한 사회는 시민들이 주체가 되어 위험에 대해서 알고, 위험한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참여할 수 있는 사회이다. 그런데 정부는 ‘안전이 최고의 가치라는 인식을 갖도록 하겠다’고 말할 뿐, 사회를 안전하게 만들겠다고 하지 않는다. 정부는 ‘안전제일주의 사회’를 만들려는 것이지 안전한 사회를 만들려는 것은 아니다.
말트집을 잡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정말로 안전한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면 위험을 만드는 근본 요소인 기업의 이윤중심 구조를 없애고, 규제완화 정책을 그만두어야 한다. 그런데 안전규제를 완화해버리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중단 없이 수행하겠다고 말한다. 정부는 공직개혁과 부패척결이 핵심이라고 말하면서도 높은 검증기준을 통과할 사람을 찾는 것은 어려우니 각종 비리와 협잡으로 얼룩진 장관들을 승인하라고 윽박지른다. ‘안전한 사회’를 만들 의지는 없는 것이다. 안전한 사회를 만들 의지는 없으니 ‘안전’을 구호삼아 외치면서 결국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면서 시민들을 ‘통제’하고자 하는 것일 뿐이다.
정홍원 총리는 ‘국가대개조 범국민위원회’를 구성해서 민관 합동체계를 만들겠다고 말한다. 그 때의 각계는 누구인가? 정부는 공무원노조를 불온시하고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들어서 대화 상대로도 인정하지 않는다. 철도노조의 파업을 이유로 민주노총을 침탈하고 사람들을 잡아갔다. 이 정부는 세월호 사고에 애통해하고 집회에 나가려는 학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는 정부이다. 국민의 목소리를 들으라고 외치면서 청와대로 행진한 이들에게 물대포를 쏘고 연행하고 구속한 정부이다. 도대체 누구의 이야기를 듣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물론 노동계나 종교계, 문화예술계 등 다양한 이들을 불러모아 각계의 목소리를 반영했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추세라면 거기에는 전제가 붙을 것이다. “정부를 지지하고 정부의 목소리만 반영해 줄 각계”라는 전제 말이다.
박근혜정부는 절대로 이 사회를 제대로 바꿀 수 없다. 세월호 참사 이후 철저하게 반성하고 책임자들이 제대로 사퇴했다면 또 모르겠다. 그런데 책임을 지겠다고 사퇴한 총리가 유임되고, 정작 아무도 책임을 진 이들은 없고, 국정조사에서 자료 제출을 요구하면 자료도 내놓지 않고 버티는 이 뻔뻔한 정부가 무슨 국가대개조를 이야기하고, 안전을 이야기하는가. 지금의 정부는 변화의 대상이지 주체가 될 수 없다.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것은 세월호참사에 대해 진심으로 가슴 아파하고 함께 애도하고 눈물 흘렸던 시민들이다. 위험에 대해서 말하지 못했음을 통렬하게 반성하며 조용히 유가족들과 함께하는 노동자들이다. 연행을 각오하며 청와대로 행진하는 젊은이들이다.
이런 이들이 나설 때 ‘이윤보다 인간의 존엄과 생명을 더 소중히 여기는 사회’가 만들어질 것이다. 안전에 대한 규제를 더 강화할 것이고, 통제보다는 참여를 더 중요하게 여길 것이고, 노동자의 권리와 시민들의 알권리를 찾아갈 것이고, 책임자를 철저하게 처벌하여 생명을 함부로 여기지 못하게 만들 것이다. 지금 그런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다. 세월호 특별법을 위한 400만명의 서명과 노후 원전을 폐쇄하기 위한 무수히 많은 노력과, 생명과 안전을 다루는 업무의 외주화를 막기 위한 싸움과, 말하고 모이고 행동할 자유를 위해 노력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점차로 모이고 있다. 이것이 바로 시민의 힘이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길이다. 이런 힘이 모일 때 ‘안전한 사회를 핑계로 시민들을 통제하는 사회’를 넘어 진짜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가게 될 것이다. 4·16 이후의 달라짐은 이렇게 이미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