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말만 하고 국민은 말 못하고
세월호 추모시민 폭력 연행 경찰 규탄 기자회견
○일시 : 2014년 5월 20일(화) 오전 11시
○장소 : 경찰청 앞
○기자회견 순서
-사회 : 이은정(천주교인권위원회)
-경과보고 : 명숙(인권운동사랑방)
-17일 연행 당사자 : 향린교회 고상균 목사
-18일 연행 당사자 : 석방자가 없어 발언 못함
-법률적 의견 : 김종보(민주사회를위한 변호사모임)
-삼성전자서비스 참석 및 발언 : 박성용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통영분회장
대통령의 담화문이 발표되었다. 여전히 진행 중인 참사에 대해 대통령의 말은 실종자 가족과 국민들 모두의 마음을 채우지 못했다. 돌아오지 못한 가족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신속한 구조를 위한 약속조차 없는 말은 공허했다. 한 달 넘겨 대통령이 연 입에는 말만 넘쳤다. 반면 추모와 분노의 마음을 가진 국민에 대한 폭력은 도를 넘었다. ‘가만히 있으라’ 해서 죽은 목숨들 앞에 ‘가만히 있지 않겠다’ 나선 국민들을 향해 연행과 폭력을 행사 했다. 이미 유가족들 앞을 가로막았던 방패였다. 노란 리본을 단 시민을 검문했던 인권유린이었다. 17일과 18일 행해진 경찰에 의한 인권유린은 극에 달했다. 연행된 이들 중에는 고등학생, 장애인 활동보조인, 일본인 등이 있었으며 침묵행진 등으로 어떠한 폭력적 상황도 벌이지 않는 시민들이었다. 여전히 ‘가만히 있으라’ 말하지 못하게 하는 정부와 경찰을 규탄한다.
기자회견문
담화문이 발표되었다. 대통령의 책임이라는 말로 시작했으나 팽목항 구조를 위한 계획은 한 마디도 없었다. 해경 해체 등 선정적인 말 뒤로 풀어야할 숙제는 산적했으나 대통령은 대화 한마디 없이 외유로 자리를 비웠다. 어린 학생들을 비롯한 수 많은 생명의 참사 뒤에 여전히 눈물과 추모, 분노에 쌓인 국민들은 답답하기만 하다.
‘가만히 있으라’해서 죽은 사람들을 기억하며 이제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시민들의 평화적인 시위에 정부의 대답은 참혹하기만 하다. 유가족들의 가는 길에 경찰 방패로 막더니, 심지어 유가족들을 사찰했다. 그리고 시민들이 달고 있는 노란 리본을 불순하다면서 검문했다. 지난 주말 청와대로 향하던 시민들과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대학생들의 시위는 경찰의 모진 폭력으로 야만에 물들었다.
경찰은 해산이 아니라 연행과 진압을 목적으로 시민들의 사지를 들었다. 밀양 할매들은 남성경찰에게 팔이 잡히고 가슴이 막혔다. 다수 경찰이 도로교통을 방해하며 침묵 행진하는 이들에게 ‘도로교통방해’의 혐의를 씌웠다. 신호대기 중인 차들이 서 있는 도로로 시민들을 토끼 몰이했다. 개인 휴대전화로 채증을 하고, 미란다 고지는 형식적으로 외치며 연행에만 바빴다. 반바지를 입거나 치마 입은 여학생들의 사지를 들며 성추행과 모욕을 주었다. 드러누운 사람의 가슴을 발로 밟고 끌어내는 폭력을 저질렀다. 고등학생, 일본인, 기자, 장애인 활동보조인을 무차별적으로 연행했다. 심각한 질병을 앓는 환자에게는 치료도 제대로 조치하지 않았다. 왜 그랬는가.
같은 날 18일 강남에서는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의 시신을 강제이동하는 경찰들의 폭력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억울함을 유서에 남기고 떠난 노동자의 시신을, 울고 있는 동료들로 부터 강제로 뺏을 만큼 지금 공권력은 이성을 잃었다. 이 모든 것이 ‘가만히 있으라’는 이 정부의 지시가 아니겠는가. 왜 그래야 했는가.
대통령은 말이 넘치고, 국민들은 말 못하는 이곳은 침몰하는 세월호와 같다. 우리 모두 살기 위해서는 함께 모이고 꿈꾸고 연대하고 진실을 찾아가야한다. 그것을 막는 다면, 경찰도 이 정부도 모두 ‘가만히 있으라’ 지시하고 혼자 탈출한 선장과 다르지 않다. 경찰은 반성하고 정부는 사죄하라. 함께 살기 위한 우리 모두의 구조 신호다.
2014년 5월 20일
세월호 참사 대응 각계 원탁회의 존엄과 안전위원회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인권단체연석회의,한국진보연대,광주인권운동센터,다산인권센터,동성애자인권연대,빈곤과차별에저항하는인권운동연대,사회진보연대,성적소수문화환경을위한모임연분홍치마,인권운동공간‘활’,인권운동사랑방,인권중심사람,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전북평화와인권연대,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천주교인권위원회,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인권센터,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인권단체연석회의(*)
*인권단체연석회의 소속 단체는 다음과 같음
거창평화인권예술제위원회, 구속노동자후원회, 광주인권운동센터, 노동인권실현을위한노무사모임, 다산인권센터, 동성애자인권연대, 문화연대,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불교인권위원회, 빈곤과차별에저항하는인권운동연대, 사회진보연대, 서울인권영화제, 새사회연대, 삼성노동인권지킴이, 안산노동인권센터, HIV/AIDS인권연대나누리+,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울산인권운동연대, 원불교인권위원회, 이주인권연대, 인권교육센터‘들’, 국제민주연대, 인권운동사랑방,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전쟁없는세상, 진보네트워크센터, 천주교인권위원회, 청주노동인권센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인권센터,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친구사이, 한국비정규노동센터, 한국DPI,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KANOS
5월 17일과 18일 세월호 참사 추모 시민에 대한 폭력연행 경과
<17일 상황>
○ 청계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범국민 촛불행동 집회를 마치고 8시 15분경 종로 보신각 쪽으로 추모대열이 행진이 시작됨. 8시 40분경 행진대오 250여 명이 종로3가에서 안국동 방향으로 행진을 시작함. 편도 1차로로 행진하던 중 안국동 방향에서는 인도로 행진
○ 9시 20분경 인도로 행진하던 중 경찰이 현대계동사옥 앞에 차도와 인도 전부를 막고 차량 통행을 완전히 막고 있어서 일부 대오는 차도로 내려가서 경찰 앞에서 연좌. 대부분은 인도에서 막혀 앞으로 가지 못하고 서 있었음.
○ 약 20분가량 간단하게 참여자들이 세월호 참사에 대한 자유발언을 함. 경찰이 9시 35분 경 3차 해산명령을 내렸음. 참가자들은 발언도 끝나서 추모대오가 많은 시청으로 함께하기 위해서 해산하자고 사회를 보던 사람이 발언하자 대오는 해산하여 삼삼오오 이동 시작함.
○ 9시 40분 갑자기 대오의 뒷부분과 현대 계옥사옥에서 경찰들이 뛰어 들어와 해산하는 이들을 쫓고 막음. 9시 50분 대오의 앞에 있던 경찰들도 밀고 들어와서 참가자들을 모두 인도로 올라왔으나 경찰은 포위한 채 인도로 사람들을 밀어 넣고 한명씩 연행 시작함. 경찰은 한명도 남김없이 연행하라고 지시함.
○ 인도에서 가만히 있던 시민들을 모두 연행. 인도에서 사람 1명당 경찰 20여명이 포위할 정도로 과잉 진압을 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손을 다치거나 발을 다친 사람, 실신한 사람들이 생김. 연행 과정에서 민간 주차장에 들어가 있던 사람들과, 기자, 학생들도 마구잡이로 연행. 10시 50분경 모두 119명 연행.
<18일 상황>
○ 5시경 청계광장에서 청와대 만민공동회를 마치고 행진하던 대오를 동아일보에서 막음. 참가하였던 다수 시민과 밀양 주민들을 경찰이 강압적으로 이동도 못하게 하고 막음. 5시 40분경 광화문 광장으로 가려는 밀양할매들을 남성경찰이 팔을 잡고 가슴을 막으며 들어가지 조차 못하게 함. 6시10분경 광화문 일대에 경찰이 통행을 막음. 백기완 선생 등 2시간 동안 움직이지 못함. 6시30분 광화문 앞에 청와대 만민공동회 기자회견을 7시 30분에 마침. 삼성노동자 시신 탈취 소식에 대오들이 서울의료원으로 대부분 이동.
○ 비슷한 시각인 4시 30분경 시청 앞에 ‘가만있으라’ 침묵행진이 시작. 침묵을 유지하면서 분향소를 지나 영풍문고 앞에서 자유발언 시작. 6시 20분경 다시 만민공동회가 경찰에 의해 막혔다는 사실 들음. 6시 40분경 자유발언을 마무리 하고 침묵행진은 침묵을 유지하며 쳥계광장 소라 조형물 옆에 단식농성 중인 대학생들 지지 방문함.
○ 7시 15분경 용혜인 씨가 집회(이전에는 추모제 형식이라 집회신고를 할 필요가 없었으나, 이번에는 집회신고를 했습니다)종료 예정지였던 동화 면세점까지 가지 않고 청계광장에서 공식 행사를 마치겠다고 선언함. 광화문 앞에 진행되고 있는 청와대 만민공동회 기자회견을 갈 수 있는 사람을 가자고 제안함. 일민 미술관 앞쪽으로 이동하자 경찰들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첫번째 횡단보도를 건널 때 이미 횡단보도 전체를 포위함. 당황한 행진참여자들이 우왕좌왕하며 건너기를 주저하자 경찰들이 방패로 밀어 몸싸움이 조금 벌어졌고, 금새 마이크 든 경찰이 나타나서 침묵행진이 ‘일반시민’의 교통을 방해하여 엄청난 고통을 주고 있다며 해산하라고 함.
○ 8시 35분 경 동아면세점 쪽 시민들이 횡단보도를 막은 경찰들에게 항의를 하자 그쪽 횡단보도 진입로는 열고 일민미술관과 동아면세점 쪽 횡단보도의 중간지대에서 일민 미술관 쪽에서 방패로 계속 밀어내서 결국 침묵행진 참여자들은 중간지대와 동아 면세점 쪽 횡단보도인 도로 위에 있게 됨. 경찰들이 다 점거했는데도 침묵행진 때문에 교통 혼잡이 벌어진다고 함. 참가자들은 횡단보도와 인도 사이에 연좌하여 자유발언 진행.
○ 9시 경 연행 경고하면서 횡단보도 쪽에서 인도 쪽으로 밀어내기 시작. 경찰들이 길을 열어줘서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이동한 사람도 있고 일부는 광장으로 경찰이 밀어붙이더니 연행을 시작함. 당시 사람들은 구호도 외치지 않았지만 불법 시위라며 해산 명령 고지. 밀어내는 과정에서 홍혜인 호흡곤란으로 쓰러짐.
○ 9시 10분 경 경찰이 고착 상태를 풀었음. 고착 상태가 풀린 후 참가자들이 “가만히 있으라” 종이 피켓을 들고 횡단보도를 건너서 광화문 광장 쪽으로 향하자 뒤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동대가 달려들어 광장 방향 횡단보도와 도로, 광화문 광장에서 무차별 연행. 이 때, 광화문 광장 쪽에 있던 기동대와 세종문화회관 방향 코너 쪽에 있던 기동대가 한꺼번에 달려와 참가자들을 도로 쪽으로 몰면서 연행해 감. 도로에는 차들이 신호대기 상태에서 서 있어서 매우 위험했음. 참가자들 도로와 광장 쪽으로 몰아서 연행해 가면서 방송차가 광화문 사거리 쪽을 돌아 역주행해서 옴. 9시 15분경 한 차례 연행 후 전경차 한 대 연행자 싣고 출발.
○ 9시 20분-25분 경 남은 대오들이 광화문 광장 쪽으로 다시 향함.. 광화문 광장 이순신 동상을 등지고 오른쪽 화단에 참가자들이 모임. 9시 35분 경 경찰들이 화단쪽 참가자들 둘러싸기 시작. 잠시 후 이순신 동상 앞과 화단 쪽으로 전경 ㄴ 자 배치. 잠시 후 다시 전경차를 광화문 광장 왼쪽과 광화문광장 끝 쪽으로 배치하기 시작. 체적으로 이순신 동상부터 광장 끝쪽을 모두 둘러쌈. 이때까지 횡당보도는 열려 있는 상태. 9시 45분 경 전경 추가 배치. 3-4겹으로 참가자들을 둘러싸고 전경차까지 길을 만듦. 항의하는 시민들까지 연행.
○ 10시 경 참가자 연행 시작. 안쪽에 고립된 상태에서 전경차로 연행해감. 시민들은 전경차 쪽 횡단보도 앞에 모여서 항의. 10시 반이 넘어 연행자들을 실은 차가 다 떠나고 방패막을 만들었던 경찰들도 철수하기 시작. 10시 15분 경 화단 쪽 대오 계속 고립된 상태에서 다시 연행 시작. 10시 40분 경 연행 종료
○ 연행 과정에서의 문제점 : 연행은 한명에 대여섯 명, 많게는 여덟 명까지 붙어서 사지를 들고 꼼짝 못하게 온몸을 짓누르고 그 와중에서 규정된 채증장비가 아닌 핸드폰으로 계속 채증하고, 미란다 고지는 잘 들리지도 않을 정도로 빠르게 외치며 이동. 심지어 남자경찰이 여학생들을 연행하면서 성추행이 발생, 시민들이 항의하자 여경들로 나중에 바뀌었음. 하지만 반바지를 입거나 치마를 입은 여성들을 그냥 사지를 들어 속옷이 보이는 등 모욕적인 상황이었음. 하지만 당시 광화문 광장은 위급한 상황이 아니었음. 참여자들을 연행할 차를 막으려고 남성분 한 분이 차 앞이 드러눕자 경찰이 달려와 발로 밟고 끌어냈고 그 장면을 촬영하려던 기자도 경찰에게 맞아 이후에도 가슴통증을 호소함.
* 사복 경찰 40여 명. 참가자 사이사이에 있었음
* 사복 입고 채증하는 경찰 많았음
* 최루액 가방, 소화기 소지한 경찰들도 대기 중이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