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희생자 박예슬 전시회 관람 통행방해 사건
국가인권위 진정
2일 존엄과안전위원회 자유팀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인 단원고등학교 2학년 고(故) 박예슬 씨의 작품 전시회를 관람하기 위해 도보로 이동하던 천주교 평신도·수도자·성직자의 통행을 방해한 경찰을 상대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습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위한 단식기도회’를 지난 7월 31일부터 매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었습니다. 서촌갤러리(대표 장영승)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인 단원고 2학년 고(故) 박예슬 씨의 작품 전시회를 지난 7월 4일부터 무기한으로 열고 있습니다. 전시회에서는 디자이너가 꿈이었던 박씨의 생전 작품 40여 점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8월 1일 피해자 전 아무개 씨는 단식기도회에 참석하던 중 위 전시회를 관람하기 위해 일행과 함께 도보로 이동하던 중 오후 3시경 서울지방경찰청 근처 인도에서 경찰 30여명의 제지를 받았습니다. 경찰은 전씨와 일행이 ‘세월호 참사 천주교 단식기도회’라고 적힌 몸자보를 가슴에 단 것을 핑계로 이들의 도보 이동을 미신고 시위라며 가로막았습니다. 전씨와 일행은 경찰의 통행 방해에 항의했지만 경찰은 몸자보를 떼지 않으면 이동할 수 없다면서 계속 통행을 방해 했습니다. 결국 전씨와 일행은 오후 3시 30분경 몸자보를 떼고 난 후에야 이동하여 전시회를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경찰의 통행방해는 이날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8월 2일에도 전씨와 일행은 오후 2시 30분경 정부서울청사 근처 인도와 같은 날 오후 3시 40분경 지하철 경복궁역 근처 인도에서 경찰의 제지를 받았습니다. 경찰은 전날과 마찬가지로 몸자보를 뗄 것을 요구했고, 실랑이 끝에 전씨와 일행은 몸자보를 떼고 난 후에야 이동하여 전시회를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경찰의 통행 방해는 8월 4일 오후 3시 30분경 세종문화회관 근처 인도에서도 이어졌습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아래 집시법) 제2조 제2호는 시위를 “여러 사람이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도로, 광장, 공원 등 일반인이 자유로이 통행할 수 있는 장소를 행진하거나 위력(威力) 또는 기세(氣勢)를 보여, 불특정한 여러 사람의 의견에 영향을 주거나 제압(制壓)을 가하는 행위”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씨와 일행은 시위를 할 의도가 전혀 없었으며 전시회를 관람하기 위해 함께 이동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이들은 ‘위력(威力) 또는 기세(氣勢)’를 보인 적도 없으며 ‘불특정한 여러 사람의 의견에 영향을 주거나 제압(制壓)’을 가하려 한 적도 없습니다. 이들은 20여명 정도의 소수였으며 구호를 외치거나 노래를 부르지도 않았고 피켓이나 현수막을 들지도 않았습니다. 실제로 경찰이 통행제지 행위를 그친 후 전씨와 일행은 이동하여 전시회를 관람했을 뿐입니다.
이처럼 전씨와 일행은 단식기도회에 참여하던 중 전시회를 관람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었을 뿐이었으므로 이를 집시법상 시위로 간주하는 것 자체가 부당합니다. 경찰이 문제 삼은 몸자보는 단식기도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단식 중이라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 착용한 것일 뿐이었습니다. 만약 몸자보를 착용한 채 도보로 이동하는 것을 집시법상 시위로 간주한다면, 일반적으로 단체 티셔츠 등을 착용하고 일행과 함께 인도를 이용하는 모든 사람들이 미신고 시위의 참여자로 간주되는 어이없는 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경찰의 통행방해는 ‘경찰관 직무집행법’(아래 경직법)을 위반한 경찰력 행사입니다. 경찰이 현장에서 명시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통행방해의 법적 근거로 제시할 수 있는 조문은 “경찰관은 범죄행위가 목전(目前)에 행하여지려고 하고 있다고 인정될 때에는 이를 예방하기 위하여 관계인에게 필요한 경고를 하고, 그 행위로 인하여 사람의 생명·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긴급한 경우에는 그 행위를 제지할 수 있다”라고 규정한 경직법 제6조가 유일합니다. 즉 경찰은 전씨와 일행의 도보 이동이 미신고 시위로 집시법을 위반한 범죄행위여서 통행을 제지했다는 핑계를 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경찰이 통행 등을 제지할 수 있는 기준을 엄격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대법원은 “경찰관직무집행법 제6조 제1항 중 경찰관의 제지에 관한 부분은 범죄의 예방을 위한 경찰 행정상 즉시강제에 관한 근거 조항이다. 행정상 즉시강제는 그 본질상 행정 목적 달성을 위하여 불가피한 한도 내에서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것이므로, 위 조항에 의한 경찰관의 제지 조치 역시 그러한 조치가 불가피한 최소한도 내에서만 행사되도록 그 발동·행사 요건을 신중하고 엄격하게 해석하여야 한다. 그러한 해석·적용의 범위 내에서만 우리 헌법상 신체의 자유 등 기본권 보장 조항과 그 정신 및 해석 원칙에 합치될 수 있다”고 전제하고, “따라서 경찰관은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 행위가 눈앞에서 막 이루어지려고 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상황이고, 그 행위를 당장 제지하지 않으면 곧 인명·신체에 위해를 미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상황이어서, 직접 제지하는 방법 외에는 위와 같은 결과를 막을 수 없는 절박한 사태일 때에만 경찰관직무집행법 제6조 제1항에 의하여 적법하게 그 행위를 제지할 수 있고, 그 범위 내에서만 경찰관의 제지 조치가 적법한 직무집행으로 평가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대법원 2008.11.13. 선고 2007도9794 판결).
이에 따르면 경찰이 경직법 제6조에 따라 시민들의 통행을 제지하는 것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①경찰의 자의적인 판단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불법행위가 눈앞에서 막 이루어지려고 하는 상황에서 ②행위를 제지하지 않으면 인명·신체에 위해를 미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상황이어야 하며 ③통행을 제지하는 것 외에 다른 수단을 찾을 수 없는 경우여야 합니다. 그러나 전씨와 일행은 단식기도회에 참여하던 중 위 전시회를 관람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었을 뿐이었으므로 이는 불법행위로 규정될 수 없습니다. 설사 전씨와 일행의 도보 이동을 집시법상 미신고 시위로 본다 하더라도 현행법은 이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현행 집시법에는 미신고집회의 주최자에 대해서는 처벌 조항(제22조 제2항)이 있지만 참가자에 대해서는 처벌조항이 없습니다. 다만, 미신고집회라는 이유로 경찰이 해산명령을 하고 참가자가 이에 불응하면 6개월 이하의 징역 또는 50만원 이하의 벌금·구류 또는 과료에 처해집니다(제24조 제5호). 그러나 경찰은 전씨와 일행에게 해산명령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따라서 경찰의 통행방해는 애초 범죄에 해당하지 않는 행위를 제지한 것으로 경직법 제6조의 범위를 벗어난 위법한 경찰력 행사입니다.
설사 경찰이 해산명령을 했다 하더라도 이 사건에서는 적법한 해산명령이 될 수 없습니다. 이미 대법원은 “(집시법) 제20조 제1항 제2호가 미신고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해산명령 대상으로 하면서 별도의 해산 요건을 정하고 있지 않더라도, 그 옥외집회 또는 시위로 인하여 타인의 법익이나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한 직접적인 위험이 명백하게 초래된 경우에 한하여 위 조항에 기하여 해산을 명할 수 있고, 이러한 요건을 갖춘 해산명령에 불응하는 경우에만 집시법 제24조 제5호에 의하여 처벌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단함으로써 경찰의 자의적인 해산명령을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대법원 2012. 4. 19. 선고 2010도6388 전원합의체 판결). 위 전시회를 관람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었을 뿐인 이 사건 피해자들 및 일행의 이동이 ‘타인의 법익이나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한 직접적인 위험이 명백하게 초래된 경우’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한편, 전씨와 일행의 도보 이동이 불법행위에 해당한다 하더라도 당시 상황은 그 ‘행위를 제지하지 않으면 인명·신체에 위해를 미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지도 않았습니다. 전씨와 일행은 전시회를 관람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도 경찰의 통행방해는 경직법 제6조의 범위를 벗어난 위법한 경찰력 행사입니다.
일반 공중에게 개방된 장소인 인도를 개별적으로 또는 일행과 함께 통행하는 것은 헌법 제10조 전문의 행복추구권의 일부인 일반적 행동자유권으로 헌법이 보장하고 있습니다. 경찰의 통행 방해는 경직법 제6조의 경찰력 행사 범위를 벗어나 피해자들의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침해한 것으로 위법한 공권력 행사에 해당합니다. 우리 단체들은 진정서를 통해 가해 경찰과 이들을 감독하는 경찰청에 권고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을 국가인권위에 요구했습니다. 또한 유사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