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6일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제 후 행진 과정에서의
세월호 유가족 부상 사건개요 및 경찰 대응의 문제점
4월 11일 집회에 이어 4월 16일 집회에서도 경찰은 유가족과 집회참여자들을 대거 연행하더니 급기야는 유가족에게 폭력을 행사하여 심각한 부상을 입혔다. 서울광장에서 열린 추모문화제는 7만 명의 인파가 참여하였다. 이후 유가족과 시민들은 광화문 분향소로 이동하려 하였으나 경찰차벽에 막혔다. 4월 13일 강신명 경찰청장은 차벽설치를 언급하더니 4월 16일 세월호1주기 추모행사에 경찰은 주요 도로를 차벽으로 막아 물샐 틈 없이 봉쇄했다. 경찰은 광화문 주변은 물론 청와대로 갈 수 있는 모든 도로와 인도를 차단시켰다.
분향소로 가지 못한 가족과 시민들은 불가피하게 도심 전역으로 흩어져 산발적으로 광화문 광장으로 진입하려 했으나 곳곳에서 경찰병력과 차벽에 가로막혔다. 이 과정에서 세월호 가족 한 분이 갈비뼈 4개에 금이 가는 중상을 입었다.
유가족 부상 사건개요
4월 17일 새벽 1시경 서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1주기 추모제가 끝난 뒤, 유가족 일부가 경복궁 방향으로 행진하던 중 경찰이 길목을 막고 있어서 인사동 샛길로 경로를 틀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성복엄마(김남희님)가 조계사 일주문 앞에서 경찰 폭력에 부상을 당했다. 당시 일주문 앞에는 전경이 3줄 정도 배치되어 있었으며 성복엄마를 비롯한 유가족 몇몇이 대열 맨 앞에서 행진해 들어왔다. 당시 귀퉁이가 약간 뚫려 있는 상황에서 전경이 성복엄마를 비롯한 엄마 몇몇을 밀어 붙이면서, 성빈엄마와 성복엄마 2명이 넘어졌다. 성빈 엄마는 뒤로 넘어졌고, 성복엄마는 돌로 된 큰 화단에 옆구리를 부딪히며 쓰러져 고통을 크게 호소했다.
성복엄마가 고통을 호소하며 유리벽에 기대어 있고 다른 엄마가 성복엄마를 안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 3명을 향해 전경 60~70명이 뛰어왔다. 유가족 5~6명을 전경들이 숨 쉬는 소리가 다 들릴 정도로 유리벽으로 밀어붙이면서 부상당한 성복엄마는 더욱 극심한 고통을 호소했다. 유가족들이 “119 불렀으니 풀어달라, 아픈 사람 있다”고 소리를 질렀으나 경찰은 이를 풀지 않고 10분간 더 고착했다. 유가족들의 외침에 지휘관이 “입 닥치고 그 안에 가만있어, 들어가”라고 폭언을 했다. 고착을 풀고 난 뒤 5분 뒤에 119가 도착하였으나 성복엄마가 혼자 몸을 가누지 못해 들것에 실려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함께 있던 유가족은 “엄마가 넘어지자마자 너무 고통스러워서 울고 있는 것을 경찰들이 뻔히 보면서도 유리벽 쪽으로 밀어붙였다”고 증언했다.
현재 성복엄마 김남희님은 병원 입원 중이며, 갈비뼈 4개에 금이 간 늑골 골절 진단을 받았다. 또한 갈비뼈가 폐를 싸고 있는 내부 피부막을 찔러 손상이 있기 때문에 수술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절대 안정을 취한 후 관찰 중이다.
경찰 대응의 문제점
당시 경찰은 광화문으로 가는 모든 차도와 인도를 봉쇄하면서 추모의 행렬을 막아섰다. 어둠이 짖게 내려않은 서울 도심 곳곳은 경찰차벽과 경찰병력이 진주하면서 흡사 계엄령처럼 거리에서 시민들이 자유롭게 오고갈 수 없었다. 경찰은 서울 도심의 주요도로를 새벽 2시까지 이동하지 못하도록 차량과 시민들의 발을 통제하였다.
그 과정에서 새벽 1시경 광화문으로 향하는 유가족을 향해 경찰은 폭력으로 대응하였고 심각한 중상을 입혔다. 게다가 경찰은 부상자를 보호하고 시급히 의료지원을 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채 약 10분간 크게 다친 부상자를 방치했을 뿐만 아니라 그를 10분간 밀어붙인 것은 골절을 심각하게 악화시킬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경찰은 시민의 안전과 보호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지 않았다. 또한 경찰은 구조를 호소하는 사람들을 위협하며 협박을 일삼았다. 어둠 속에서 여성 3명을 향해 60~70명의 남성경찰들이 에워쌓아 윽박지르고 겁박을 서슴지 않은 행태는 비인도적인 처우이다.
평화롭게 이동하고 있는 유가족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부상자 이송을 소홀히 하는 것은 물론 유가족을 협박하는 경찰의 태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우리는 이후 책임을 받드시 물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