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님께
골든타임의 결단, 이번에는 놓치지 마십시오
오늘 진도에서 또 한 분의 실종자가 발견되었네요. 돌아와 준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그러나 아직 돌아오지 못한 열 명을 떠올리면 물을 마시다가도 가슴이 메어 멈추게 되는 시간들을, 우리 가족들은 보내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님의 요즘은 어떤 시간들로 채워지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어제는 차웅이 엄마가 쓰러졌습니다. 대통령님께서도 정차웅 군을 우리 시대의 영웅이라고 부르셨죠. 자신의 구명조끼를 친구에게 벗어준 친구, 바다에서 가장 먼저 발견되었지만 결국 살아나지 못했던 친구입니다. 엄마는 광화문 광장에서 아이들이 살아있던 마지막 순간을 담은 영상을 보고 있었습니다. 저렇게 살아 있었는데, 살고 싶다고 울부짖는데, 그러면서도 친구들을 서로 달래는데, 거기서 툭 끊겨 버린 동영상을 보며, 엄마는 통곡하다가 혼절했습니다. 대통령님은 혹시 이 영상을 보셨나요? 마지막 순간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 속에서 누군가 자신들을 기억해주기를 바라며 남긴 기록, 구조의 골든타임이 흘러가는 동안 아이들이 남긴 동영상입니다.
대통령님은 그 친구를 우리 시대의 진정한 영웅이라고 부르셨죠? 용기 있는 그들의 모습에서 대한민국의 희망을 본다고 하셨죠? 우리 가족들은 살아남은 사람들이 그 희망을 이어가야 한다는 마음 하나로 일주일 전부터 국회 앞에서 농성 중입니다. 아이들이 배 안에서 애타게 구조를 기다리는 그 때에 배 바깥에서는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나. 우리가 궁금한 것은 그것입니다. 살려내고 있다고, 살아 나왔다고 언론이 전하던 소식은 배신감만을 안겨줬고, 구조의 골든타임 동안 컨트롤타워는 시간만 낭비하고 있었다는 사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진실을 철저히 밝히자는 것입니다. 책임져야 할 사람들과 기관들이 그에 맞는 책임을 지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국회는 꿈쩍을 하지 않습니다. 여·야와 가족 3자 협의를 요구했더니 새누리당이 뒤늦게 달려왔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들고 온 것은 구명정은커녕 구명조끼도 되지 않는 무력한 법안이었습니다. 임시국회 회기 마지막 날이었던 어제, 가족들은 절망하기도 했습니다. 전례 없는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자는데, 새누리당은 계속 전례를 따지며 특별법의 내용을 문제 삼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전체 변호사를 법률적으로 대표하는 대한변협이 사법체계를 흔드는 법안을 만들었다고요? 새누리당의 주장은 자신들이 흔들리지 않으려는 핑계일 뿐입니다. 세월호가 침몰하던 시각, 한국선주협회가 후원하고 해양산업총연합회가 주관하는 조찬포럼에서 김무성 당대표가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더군요. 특별법에 담긴 조사와 기소의 권한이 자신들을 겨냥할까 두려워 도망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 가족들은 국회 앞에서 다시 세월호에 탄 기분입니다. 연락망과 지휘 체계가 흔들린다며 서로 책임을 미루고, 명령을 기다리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정작 사고 발생 현장에서 아무도 구조하지 못했던, 잃어버린 골든타임. 이번에는 놓치지 않고 싶습니다. 대통령님도 철저한 진상 규명을 약속했습니다. 특별법 제정도 약속하셨지요. 여·야에 특별법 제정을 요청한 16일이 지났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대통령님이 결단하셔야 합니다. 우리 가족들은 7월 임시국회가 다시 열릴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가능한 권한이 명시된 특별법이 제정되어야 한다고 말씀해주십시오. 가족과 국민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위원회를 구성하는 특별법이 제정되어야 한다고 말씀해주십시오. 아무도 결단하지 않아, 아무도 구조하지 못했던 세월호 참사의 비극으로부터, 다른 대한민국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주십시오.
우리는 350만 국민들과 함께 특별법을 청원했습니다. 서명용지를 들고 국회 안으로 끊임없이 밀려들어온 국민의 물결이 우리에게 힘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가족들만의 바람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안전한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국민 모두의 요구이자 명령이라는 것을 우리는 깨닫고 있습니다. 심지어 고등학교 학생 10명 중 7명이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를 못 믿겠다고 하고 있을 정도로 심각한 실정입니다.
5일 전부터 열다섯 명의 가족이 단식을 시작했고, 어제는 두 명이 탈수와 탈진으로 병원에 실려갔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멈출 생각이 없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함께 기억해주는 국민들, 세월호 참사 이전과는 다른 사회를 만들자고 다짐하는 국민들이 있어 멈출 수도 없습니다. 아마 대통령님도 결단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저희 가족들은 특별법이 제대로 통과될 때까지 단식으로 호소하도록 하겠습니다.
2014. 7. 18.
세월호 참사 일반인 희생자 유가족 대책위원회
세월호 참사 희생자, 실종자, 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