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2학년 4반 한정무 아빠 한상철입니다.
제가 이 자리에 세 번 올라왔습니다. 오늘이. 처음에 왔을 때는… 감사합니다.
처음에 올라왔을 때는 정말로 아무 생각도 없었습니다. 올라와서 ‘아 무슨 말을 할까‘ 그때가 처음 와서 시민여러분을 뵙고 서명을 진행했고 그러면서 용기를 받았고. 그랬던 게 벌써 한 달하고도 거의 두 달이 됐습니다.
지금 저희가 350만이라는,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없는 거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저희 어머님께서 아버님께서 국민께서 다 도와주셔서 지금 저희가 이것을 이룩하고. 천만서명운동을 끝까지, 특별법이 제정되는 그 순간까지 멈추지 않고 계속 해나갈 겁니다.
저는 아침에 집에서 나올 때, 저는 원래 아이하고 그렇게 많이 친한 아빠는 아니었습니다. 제가 요즘은 아이사진을 자주 봅니다. 나올 때 꼭 얘기하죠. 여러분들 다 아시는 거 있죠. ‘아들아, 아빠가 정말 특별법을 만들 수 있을까’ 예, 다짐합니다.
고로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특별법을 만들 수 있겠습니까. 진상규명 할 수 있겠습니까. 책임자처벌 할 수 있겠습니까.
네, 여러분의 힘을 받아서 꼭 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도와주셨는데, 또 송구스러운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저희가 15일, 여러분이 그렇게 모아주신 서명지를 들고 국회로 나가는 날입니다. 10시에 여의도 공원에서 모여서 서명용지를 나눠들고 국회로 들고 오는 행사입니다. 국민여러분들의 특별법에 대한 관심을 대외적으로 보여주고 제대로 특별법을 만들라는 뜻으로 가는 행사입니다.
여러분들께서 그 자리에 다 나와 주셔서 저희와 함께 동참해주십시오.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7월 12일 청계광장 세월호 촛불 발언록.
제가 사람 많은데서 서면은 심장이 좀 박동수가 느려집니다. 말소리도 느려집니다. 근데 오늘은 제가 지금까지 서서 말을 했던 경험 중에 제일 많은 부분이라 제가 실수도 많고 진행이 매끄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저희 희생자가족들 아직 정상치 않은 상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을 돌고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여기까지 오게 도와주신 국민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조금 전에 소개를 받은 유예은 엄마인 박은희입니다. 저희 딸이 살았을 때 이곳을 너무 오고 싶어했습니다. 촛불집회가 있을 때 마다 오고 싶어 했는데 딸아이를 둔 엄마의 노파심 때문에 한번도 와보질 못했습니다. 그런데 인제 우리 딸아이를 위한 촛불집회에 제가 이렇게 마이크를 들고 사회를 보려고 하니 마음이 착잡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래도 아이를 찾아서 이곳에 와있지만 아직도 진도 팽목항에는 11명의 생명을 기다리는 가족들이 있습니다.
“은하, 다윤이, 지연이, 현철이, 영인이, 양승진 선생님, 고창석 선생님, 권혁규님, 권재곤님, 이영숙님, 이묘희님”
이분들을 생각하면 저희 희생자가족들은 바쁘게 움직이다가도 시끄럽게 떠들다가도 일순간에 동작을 멈추고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한마음으로 그곳에서 새카맣게 속이 타서 가족을 기다리고 있는 이들을 생각하며 묵상하기를 바랍니다. 잠시 묵상하겠습니다.
진도에 있는 가족들에게 미안합니다. 거기서 촛불집회를 했어야 했는데 저희가 찾아가보질 못해서 이 마음을 그분들이 꼭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지난 11박 12일 동안 전국을 순회하며 세월호 가족버스를 타고 서명을 받으러 다녔습니다. 저희 가족들이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4월16일 팽목항으로 달려간 뒤로 저희는 너무 엄청난 일들을 겪었습니다. 수많은 일들 중에 가장 고통스러운 일은 저희 가족들이 철저하게 고립되어 있다는 거였습니다. 그 어느 곳 에서도 저희의 형편을 제대로 전달해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11박 12일 동안 저희들이 전국을 돌며 느낀 것은 이제 더 이상 저희는 고립되어 있지 않다. 외롭지 않다. 함께하는 국민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을 깨닫게 해준 국민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저희는 가는 곳마다 너무나 미안했습니다. 이제까지 저희 자신만을 위하여 저희 자식 자식들만을 보듬고 살아왔던 저희들의 모습이 부끄러웠습니다. 이런 저희들의 부족한 모습을 깨닫게 해주시고 함께 손잡아주신 국민 여러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오늘 마지막 12일째 세월호 가족버스 전국순회에 마지막 시간을 이곳에서 하려고 합니다. 이 뜻 깊은 시간을 여러분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저희들은 너무 행복합니다. 마음이 너무 힘들고 어렵지만 지금도 아침마다 아이들이 우리 곁에 없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지만 여러분들이 이렇게 함께 해주시니 힘을 내서 더 앞으로 나아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먼저 우리들의 사랑하는 아이들 이 아이들에 대한 영상 이제는 만지고 안을수 없고 영상으로 사진으로 이름으로만 만날 수 있는 아이들을 여러분들과 함께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 7월 12일 청계광장 세월호 촛불 발언록.
안녕하십니까. 시민여러분, 저는 2학년 5반 박성호 엄마 정혜숙입니다.
요즘 저희 가족들의 생활이 여러분들은 궁금하실 겁니다. 그래서 짧게 제가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세월호 사고가 있은지 벌써 88일째. 일어나지 말아야할 사고로 저희는 너무나도 귀한 자식을 잃고야 말았습니다. 아직도 팽목항에는 11명의 가족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있으라. 가만히 있으라. 아이들은 이 말만 믿고 대한민국을 믿고 어른들을 믿었습니다. 그 대가로 우리 아이들은 목숨을 잃고야 말았습니다.
가만히 있으라. 가만히 있으라. 자식을 잃은 저희는, 가족을 잃은 저희는, 살아 돌아 왔으나 짐작할 수도 없는 크나큰 상처를 입은 자식 앞에서 저희는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팽목항에 남아있는 가족들을 찾아가 아픈 마음을 서로 부둥켜안고 슬픔을 나눠야 했고, 분향소에서 천만인 서명운동을 시작하고 전국을 순회하며 저희와 마음이 같은, 슬픔을 같이 나누는 시민들을 만나고 부둥켜안으며 또다시 가만히 있지만은 않겠다는 결의를 다져왔습니다.
죽은 언론을 따끔하게 야단도 치고 청와대에 찾아가서 노숙도 불사하며 대통령과 면담도 나누고 국회에서 국정조사 위한 철야농성까지 불사하며 울부짖고 또 울부짖으며 오늘 여기까지 왔습니다. 길거리로 나와 전국을 돌아다니며 주말도 없이 서명운동을 다녔습니다.
국정조사가 시작되고 유야무야 형식뿐인 국정조사를, ‘유가족이면 가만히 있으라’ 파행도 불사하는 무성의하고 불성실한 국회의원들의 모욕을 받으면서도 그 자리를 지켜야만 했습니다.
7월 2일 서명버스를 타고 오늘 여기 이 자리까지 우리와 함께,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우리와 함께 한다는 그 일념으로 그 분들을 만나면서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아이와 함께 걸었던 그 거리에서, 아이와 함께 영화 보던 그 곳에서, 아이와 함께 쇼핑하던 그 거리에서, 그곳에서 눈물을 닦으며 가슴을 쥐어뜯으며 저희는 서명을 받았습니다.
가만히 있지 않고 저희와 함께 하겠다고 행동하시는 많은 국민들과 함께, 그분들의 응원을 받으며 음료수를 사주시고 손을 잡아주시고, 부둥켜 안아주시는 그분들의 마음을 얻으며 울고 또 울면서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여러분, 지금 국회에서는 3자 협의체를 해야 한다고 울부짖는 저희 유가족들이 여야 국회의원들의 마음을 바꿔주고자 침묵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저희가 국민들을 만나면서 달려온 이곳 광장에 계신 여러분, 저희만 울고 있는 것 아니지요. 여러분들이 함께 울어주시고, 여러분들이 함께 부르짖어주시고, 여러분들이 원하는 특별법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함께 외쳐주시고 있음을 저희들은 감격하며 듣고 있습니다. 감격하며 행동하고 있습니다. 그 힘으로 행동하겠습니다.
저희가 원하는 특별법은 대한민국이 침몰하지 않는 것입니다. 저희가 원하는 특별법은 돈이 먼저가 아니라 국민의 생명이 먼저인 그런 특별법을 원합니다.
어떤 분들은 저희가 보상을 더 바라느냐, 돈을 더 바라는 것 아니냐, 이제 그만할 때도 됐지 않냐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범인이 누구라고 아무도 저희에게 가르쳐준 사람들이 없습니다. 범인이 누구라고, 저희는 우리 아이들에게 하늘에 있는 아이들에게 말해줄 수 없습니다.
여러분, 범인을 찾아주십시오. 그 범인이 다음번에는 우리아이들의 슬픔만이 아니라, 더 많은 국민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습니다. 저희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싶습니다. 저희는 너무나 슬프게 한세상을 살겠지만. 대한민국 국민은 더 이상 저희 같은 슬픔을 갖지 않기를 저희는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 저희와 함께 하시는 여러분들이 많다는 것. 그것에 힘입어서 저희가 이렇게 이 자리에서 외칩니다.
함께 해주십시오. 끝까지 함께 해주십시오. 특별법이 진행되고 우리가 원하는 특별법이 관철된다 하더라도 제대로 대한민국을 세우고, 대한민국이 바로서서 더 이상 침몰하지 않는 대한민국을 저희에게 보여주십시오.
여러분, 대한민국 여러분, 부탁드립니다. 간절히 소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7월 12일 청계광장 세월호 촛불 발언록.
요즘 특별법 제정 얘기가 나오면서 가족들이 무슨 벼슬이냐 이런 말을 저희가 많이 듣습니다. 어제도 비슷한 말을 들어서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부모는 매일 분향소로 가고 아이 한 명은 가고 남은 아이는 방치했다. 저도 이곳에 나오면서 아이랑 싸우고 나왔습니다. 큰애가 웃는데 너무 예쁘게 곱게 하고 있는게 너무 싫은거 그래서 화를 냈는데 또 그 아이가 너무 슬퍼하면 그게 싫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저희 살고 있습니다. 누가 저희보고 닭이라고 했던 걸로 아는데 이제까지 너무 닭처럼 깜빡깜빡 잊고 살아왔기 때문에 이제는 기를 쓰고 기억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루하루가 힘들지만 우리 부모들이 여기까지 오게 해준 끈은 먼저 가있는 저희 아이들입니다. 끝까지 힘을 내겠습니다. 다음은 저희가 전국을 순회하면서 만나게 된 고마운 분들의 얼굴을 볼수 있는 시간일 것 같습니다. 저희들이 특별법을 어떻게 알리고 저희들의 손을 누가 그렇게 잡아주며 또 저희들을 안아주었는지 영상을 통해서 함께 확인했으면 좋겠습니다.
성호는 외아들입니다. 그래서 모든 부모들이 한명, 한명이 생명이 귀하지만 외아들 외딸인 경우는 더 주체 할수 없습니다. 저희가 서명을 받으러 돌아다니면서 서명지를 받을 때마다 우리 이거 하루 장사를 끝내고 돈세는 기분이야 그만큼 여러분의 서명하나하나가 그 어떤 돈보다 더 귀합니다. 언론에서 여야가 16일 세월호 특별법 합의를 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심장이 벌렁거리고 머리가 띵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흘리는 말들을 의사자 선정이야기며 보상문제며 그런부분에서 합의가 잘 안된다는 죄송합니다. 이상한 말을 지껄였습니다. 그 순간 부모들이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저희들이 원하는 것은 먼저 조속한 실종자 수습 그리고 철저하게 진실을 규명해 내는 것 그리고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끝까지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 그리고 다시는 저희와 같은 사람들이 생기지 않도록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 그것이 주 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자식을 팔아 일확천금을 노리는 천하에도 없는 못된 부모가 되어버렸습니다. 누가 저희를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자식도 빼앗은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그 자식을 볼모로 돈을 벌기 위해 거리에 나선 사람처럼 만들고 있습니다. 이게 인간이 할 짓입니까, 지금 국회에 가족대책 협의회가 가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부모의 의견이 들어간 특별법을 만들어 달라고 또 바닥에 앉아서 외치고 있습니다. 저희가 5월달에 가족대책위가 꾸려지고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저희들의 손을 잡아준 분들이 계십니다. 바로 대한변호사협회 또 민주주의변호사협회 등 변호사단체들이 오셔서 저희의 손을 잡아주셨습니다. 어떤 분들이 가족들끼리 매일 싸우는 것 아니야? 네 저희 싸웠습니다. 식구 대, 여섯명이 싸웠는데 저희 유가족 500명입니다. 게다가 한꺼번에 못 올라왔습니다. 나라가 저희 한꺼번에 찾아줬습니까? 찔끔찔끔 도대체 이 아이들을 어디다 숨겨놨다가 대리고 오는 것처럼 기다리는 동안 서로 의견을 모아놓으면 다시 새로운 사람들이 오고 그분들은 기다림에 지쳐서 분을 내면서 또 다른 의견을 냅니다. 그럼 저흰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러기를 수십번을 했습니다. 그때마다 힘들었지만 저희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우리 아이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거 하나만은 분명했으니까요. 아무리 목청껏 싸우다가도 얘들 생각합시다 그 한마디면 소리지르던 부모님들 조용히 있었습니다. 그런 부모들한테 돈보고 이러는거 아니냐고 그런 소리하는 작자들은 이 사회에서 꺼져야 합니다.
- 7월 12일 청계광장 세월호 촛불 발언록.
안녕하십니까. 유가족입니다. 2학년 4반 최성호 아빠입니다.
‘엄마의 노란손수건’ 감사합니다. 천만서명운동본부 총무를 맡고 있구요.
4월 16일 아이들이 물에 갇혔을 때 저는 제가 가면 아이를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물가에 갔을 때 그렇게 차가운 물을 만져보고, 그리고 제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힘이 빠졌습니다. 3일이 지나도 떠오르는 시체만 건지는 해경을 보면서 힘이 빠졌습니다. 4일째 아침 차가운 물에 손을 또 넣어봤습니다. ‘내 자식이 죽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지금 88일이라고 하시는데요.
아들이 보고 싶어서 아들놈이 입던 옷 입고 나왔습니다. 아들 냄새가 나는 것 같아가지고. 아들 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 아들 옷입고 아들 바지입고 아들 양말신고 다닙니다. 보고 싶습니다. 한번 딱 만져보면 좋겠는데.
전국으로 서명을 다니면서 제가 많이 울었습니다. 순천에 가서도 울었고, 부산에 가서도 울었고, 울산에 가서도 울었고. 잘 우는 아빠라고 그럽니다.
근데 한 가지 때문에 웁니다. 내 새끼가 죽은 지 88일이 지났는데, 이 병신 같은 아빠는 내 새끼가 왜죽었는지도 모릅니다. 내 새끼가 왜죽었는지도 모르는 이 병신같은 엄마들은 아빠들은 국민들의 힘을 빌어서 왜죽었는지 알려달라고 서명 받으러 다닙니다.
왜 죽었는지 모릅니다. 누구의 잘못으로 그렇게 됐는지도 모르고. 무슨 이유 때문에 그렇게 됐는지도 모르고, 누가 개입됐는지도 모르고. 내 새끼는 죽었는데 책임자는 없습니다. 아들이 보고 싶은데, 아들이 보고 싶은데, 내 새끼는 죽었고 아무도 없습니다. 너무 힘듭니다. 어떻게 살아야 될지도 모르겠고, 뭘 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보고 싶은데. 내 새끼가 보고 싶은데.
왜 안가르쳐 주는지 왜 안가르쳐 주는지 알려주십시오. 무엇이 두려워서 안가르쳐 주는지. 왜 안가르쳐 주는지. 내 새끼가 왜죽었는데. 왜 안알려 주는데. 내 새끼가 죽었는데..
도와주십시오. 무엇이 두려워서 안가르쳐 주는지 안가르쳐 주는지 알수 있게 해주십시오.
4월 16일 자식 잃은 부모가 오백명입니다. 우리는 알아야겠습니다. 아빠니까, 엄마니까, 내 새끼니까, 우리는 알아야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
- 7월 12일 청계광장 세월호 촛불 발언록.
그럼 이 시간에는 그때 우리 손을 잡아주었던 변호사님들 중에 한 분이신 박주민 변호사님의 특별법 설명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더 함께하는 변호사단체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덕분에 저희 가족들은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하나가 될 수 있었고 저희 가족들 안에도 다양한 색깔들이 있습니다. 학력도 다 다르고 고향도 다 다르고 그리고 정치색도 다 다릅니다. 하지만 아이 한 명 놓고 이렇게 하나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정치인들이 왔을 때 얘기했습니다. 우리처럼 국회에서 그렇게 할 수 없습니까? 지역 따지지 말고 진보니 보수니 따지지 말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 생각하는 마음으로 하면은 하나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걸 믿고 우리가 당신들을 뽑아준 거 아닙니까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제 우리는 큰 전환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아니 이번 참사를 계기로 저희가 무관심하게 무책임하게 맡겨 놨던 일들을 국민모두가 하나로 챙길 때가 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번 일이 그 일을 위한 시발점이길 바랍니다. 이제는 뒤에서 구경만 하지 맙시다. 이 시간에는 저희가 다 같이 구호를 외치는 시간을 갖을까 합니다. 우리 부모들이 처음에는 이것이 많이 낯설었는데 속이 응어리가 생기니까 아 이래서 구호를 하는구나 알게 됐습니다. 제가 마이크를 들고 있으니까 여러분은 오른손을 들고 같이 외쳐주시길 바랍니다.
끝부분을 세 번씩 같이 외쳐주시면 되겠습니다.
“실종자를 조속히 수습하라!”
“진실을 철저히 규명하라!”
“책임자를 끝까지 처벌하라!”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
자 이제는 특별법 제정촉구 서울시민 결의대회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7월 12일 청계광장 세월호 촛불 발언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