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그가 과연 언제까지 웃을 수 있을까
[세월호 특별법 연속기고③] 세월호 이후 다른 세상을 상상한다
박래군 ㅣ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공동운영위원장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관한 여·야 협상이 또다시 질곡에 빠졌습니다. 새누리당은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수사와 기소를 가로막은 데 이어,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권마저 흔들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독립적인 진상조사위원회의 구성은 성역 없는 진상규명을 위한 가장 중요한 첫걸음입니다.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는 연속칼럼을 통해, 세월호 가족들과 530만 국민의 염원인 특별법을 후퇴시키려는 움직임을 낱낱이 짚어보고 이를 극복해나갈 방법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기사 원문)
▲ 유가족 외면하는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오전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의사당을 방문했지만, 면담을 요구하며 의사당 입구에서 울부짖는 세월호참사 유가족들 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외면했다. 사진 왼쪽은 도착, 오른쪽은 떠날 때 모습. ⓒ 이희훈/공동취재사진
붉은 카펫은 영화제에서 영화배우들만 밟고 가는 게 아니었다. 경찰과 경호원들이 동원돼 길을 내준 붉은 카펫을 밟고 가며 미소를 짓던 대통령은 그 옆에서 절규하던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끝내 외면했다.
언제고 연락하고 찾아오면 만나겠다던 그 대통령, 유가족의 여한이 없도록 철저한 진상규명을 약속하고 눈물까지 지었던 그 대통령은 70일 넘도록 청와대 앞에서 풍찬노숙을 해온 세월호 유가족을 국회에 들어가는 그 붉은 카펫 위에서도 외면하고 말았다.
‘최종 책임자’임을 자임했던 대통령은 최종적인 성역 안으로 들어가 강고한 성벽을 둘러치고 있다. 그 성역 안에서 정부여당의 책임 회피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계속 지침으로 내렸다. 지난 7월 이후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되지 않고 난항을 거듭하며 시간을 끌게 된 데는 대통령의 앞뒤가 다른 태도에서 비롯되었다. 최종 성역이므로 이 성역을 보호하려는 정부와 여당의 일관된 태도가 특별법 협상의 최종 걸림돌이었다.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 언급도 없었으며 경제를 살리는 ‘골든타임’만 강조했다. 국민의 안전을 안전산업으로 풀겠다는, 안전을 다시 기업의 돈벌이 수단으로 넘기겠다는, 어쩌면 세월호 참사를 연장하겠다는 그런 법안을 경제 살리기 법안이라며 이 법안들의 조속한 통과를 주문했다.
눈먼 자들의 국가에서 눈뜬 자들의 국가로
그의 눈물이 거짓 눈물이었듯이 그의 미소는 악마의 미소다. 최종 책임자의 위치에서 성역으로 빠져 나간 뒤에 갖는 여유에서 오는 미소겠지만, 그가 과연 언제까지 여유 있게 웃을 수 있을까? 세월호 참사 이후 드러난 우리 사회의 모든 민낯 가운데 무책임과 무능의, 정치 부재를 확인한 것이 가장 큰 것이었지 않았을까? 안전을 지켜주지도, 제대로 구조를 해주지도, 그 뒤로 위로조차 하지 않는 정치권력의 민낯을 우리는 보았다.
울부짖는 유가족을 조롱하고 멸시하는 책임자들의 낯짝을 확인했다. 결국 그들은 스스로 가해자임을 드러냈다. 드러난 가해자의 본색… 그들도 예전 이 나라 권위주의 권력의 대를 잇는 ‘가해자의 나라’로 이 나라를 이끌어가고 있다. 가해자는 웃고 거들먹거리는 때에 피해자는 울면서 풍찬노숙을 해야 하는 잔인한 정치만 있는, 그래서 정치가 실종된 나라에서 살고 있음을 우리는 세월호 이후 처절하게 확인하고 있는 중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는 아마도 ‘눈먼 자들의 국가’에서 ‘눈뜬 자들의 국가’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눈뜬 자들의 국가에서는 더 이상 선거철만 되면 국민의 공복이 되겠다며 90도 인사를 하는 정치인들에게 속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우매한 백성이 아니라, 더 이상 노예가 아니라 스스로 나라의 주인이 되고 정치의 주체가 되는 ‘눈뜬 자들의 나라’로 가는 그 길의 입구를 찾아 우리는 지금껏 헤맸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세월호 참사는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그 나라로 가는 입구를 보여주었다. 책임자가 제대로 책임지도록 하는 일, 그 책임을 제대로 묻기 위한 진실을 밝히는 일로부터 우리는 우매한 노예에서 주인으로 서게 될 것이다.
노예에서 주인으로 서기 위하여…
▲ “저희 좀 살려주세요” 박근혜 대통령의 시정연설이 열란 29일 오전 국회 본청 앞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대통려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세월호특별법 제정 촉구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이희훈
이제 세월호 참사 200일(11월 1일)이다. “어른이 되고 싶었지만 밤하늘의 별이 되고 만”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손을 놓친 그 촉감으로 인해 평생을 괴로워하며 살아야 할 아이들과 세월호의 승객들과 그 승객들을 구출하다가 갇히고 만 선원들과 자신의 생계수단을 맹골수로에 수장시킨 화물기사들과 제주도로 살러 내려가다가 아이 하나만 남기고 다 죽은 가족들과 그들의 가족들과 친인척과 지인들과 그리고 우리는 지금도 묻고 있다. 세월호는 왜 침몰했냐고, 진실이 뭐냐고. 아직 우리는 어떤 답도 듣지 못했다.
검찰이 수사를 통해서 밝혔다는 진실은 짜맞추기였고, 꼬리 자르기였다. 실체는 따로 있고 책임자도 따로 있는데 검찰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 그런 검찰의 칼끝은 청와대의 최종 책임자와 그의 편에 선 세력들을 한 번도 겨누지 않았다. 이제 우리가 원하던 예리한 칼끝의 특별법은 없다. 하지만 조금 무디어졌을 뿐이다.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고자 하는 우리가 그 칼끝을 예리하게 벼려내야 한다. 이만한 법을 만들기 위해서 흘린 유가족들의 눈물과 호소, 그리고 함께 손잡았던 500만 명 넘는 사람들의 뜨거운 눈물과 숨결로 다시 ‘가해자의 나라’에 안주하고 있는 책임자들을 겨누어야 한다. 우리가 관심도 갖지 않고 우리가 행동하지 않으면 무딘 칼은 더욱 무디어져서 아무 쓸모없는 종이 호랑이법이 되고 만다.
우리가 깨어 있어야 특별법이 제 기능을 할 것이다. 세월호 참사가 여론과 정치적 이슈에서 멀어져 버린 사안이 된다면 모든 조사권한도 무용지물이 되고 말 것이란 점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다.
세월호 참사는 사고였을 수 있지만 끝내 가장 비극적인 참사로 변해 버린 그 과정에서 우리는 하나가 되어 단 한 명이라도 그 바다 속에서 살아오기를 얼마나 간절히 기다렸던가. 그 염원을 무참히 짓밟은 이들이 해경이나 언딘이나 구원파의 유병언에서 그칠 수 없다. 보다 거대한 권력의 핵심부, 성역 안에서 유가족을 조롱하는 그들을 정의 심판대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 그러기까지 우리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고, 오히려 이제 시작임을, 이제 우리는 겨우 진실로 향하는 입구에 서 있음을 늘 잊지 말자.
우리가 잡은 손 다시 놓지 말고, 서로서로 더욱 더 꼭 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쉽게 잊고, 쉽게 지치고, 그래서 쉽게 포기하는 백성이었다면, 이제는 우리도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고, 흔들림 없이 진실을 밝히고 그 책임자들을 처벌하는 일, 그 일을 이룬다면 다른 세상이 열리지 않겠는가. 세월호 참사의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가져올 변화를 상상하자.
4·16 약속지킴이가 되자
▲ “이선을 넘지 마세요” 박근혜 대통령의 시정연설이 열리는 29일 오전 국회 본청 앞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경찰에 가로 막힌 채 피켓을 들고 있다. ⓒ 이희훈
세월호 참사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세월호 참사 이후는 달라야 한다면 우리는 제대로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한다. 기억도 투쟁이라고 하지 않나. 끊임없이 기억하지 말고 잊으라는 세력들과의 전쟁이기 때문이다. 가치의 투쟁이기도 하다. 경쟁 제일주의, 승자독점주의가 판치는 돈을 최우선으로 여기라는 이 가치에 맞서서 인간의 생명과 안전, 즉 인권이라는 가치를 가장 소중히 여기는, 그래서 사람이 서로 존중받는, 자연과도 조화를 이루며 사는 게 행복하다고 여기는 가치를 보편화하는 투쟁이기도 하다.
그리고 세월호 희생자를 통해서 비로소 눈뜬 우리들이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세월호들’을 찾아내고 그 위험요소를 제거하는 일로 이어져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아들딸들이, 우리의 이웃이 안전하게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더는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그러기 위해서 다시 모이자. 11월 1일 안산합동분향소에서 유가족들의 200일 추모행사가 있고, 이날 오후 5시에는 청계광장에서 다시 모여서 손을 맞잡는다. 특별법 제정으로 우리의 진실을 향한 행진은 멈출 수 없다.
국민진상조사추진단을 각계각층의 전문가들과 시민들의 참여로 만들어내고 안전사회를 위한 각계의 노력을 모아내고, 그래서 내년 세월호 참사 1주기에는 반드시 시민들의 네트워크를 전국적인 차원에서 만들어내 보자. 특별법 제정이 끝이 아니라 제2단계를 시작하는 계기점일 뿐이라는 것, 인간의 연대로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려는 우리의 행동은 비로소 이제 시작일 뿐임을 선언하자.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기억’이 되고, 실종자를 잊지 않는 ‘기다림’이 되고, 언론을 대신하는 ‘소식통’이 되고, 주저함 없는 ‘외침’이 되고, 정직한 ‘기록’이 되고, 서로를 안아주는 ‘치유’가 되고, 우리가 ‘길’이 되자. ’4·16 약속지킴이’가 되는 길, 그것은 우리가 이 사회와 국가의 주인이 되는 일이고, 세월호의 승선 티켓을 쥐고 불안에 떨며 사는 위험사회를 넘어 민주주의와 인권이 꽃피는 그런 인간공동체를 만들어내는 일, 그 일은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가 손잡고 가야 할 길이지 않겠는가. 그래서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우리는 눈을 떠야 한다.” 그 뜬 눈으로 세월호 이후의 다른 세상을 상상하자.
* “눈먼 자들의 국가’ : 소설가 박민규가 세월호와 관련하여 문학동네에 기고한 글 제목이자, 문학동네가 12인의 작가의 글을 모아 낸 책 제목